최근 기자의 친지 한 분이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중, 만일을 위해서 '연명의료중단'에 대한 법 시행을 알려준후 구체적인 방법을 체크해 본 경험이 있다. 결과 심지어는 직접 관련성을 가지고 현장에서 홍보와 신청 접수를 맡은 공익기관에서도 자세한 내용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론은 아직도 이론에 머물러 있으며 현장에서 시행되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날이 갈수록 이용율이 높아질 요양병원 등 전국에 극소수에 불과한 윤리위가 설치된 의료기관 외에는 적용되지 않는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중앙일보 전문기자가 이런 사실을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편집자 - 주 ]
지난달 16일 서울 강북의 한 요양병원. 5층 병실 한 곳에 환자 15명이 함께 누워 있었다. 이곳 병실의 이름은 ‘완화치료실’. 병상 4개가 비어있다. 대부분 고령의 노인이다. 거의 모두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고 거동을 하지 못했다. 눈을 감은 채 계속 누워 있었다. 서너 명은 몸을 비틀며 약간 움직였다. 간병인과 간호사가 환자를 살피고 있었다. 문병 온 한 가족은 자신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환자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간병인이 환자에게 “아드님 왔어요”라고 목소리를 높여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환자의 의식이 거의 없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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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하면서 지난해 사망자가 30만 명에 육박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사망자는 29만8900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적지 않은 노인이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서 노인성 질환을 앓으며 말년을 보내다 생을 마감한다. 건강보험공단과 최도자 의원(바른미래당)에 따르면 지난해 요양병원에서 8만4203명, 요양시설에서 3만1317명이 숨졌다. 요양병원 사망자는 전년보다 21% 늘었다.
지난해 2월 연명의료를 중단하거나 유보(일명 존엄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인공호흡기·심폐소생술·혈액투석·항암제투여·수혈·승압제(혈압 높이는 약)·에크모(체외생명유지술) 등을 중단하게 됐다. 올 4월까지 4만6400명이 연명의료를 중단하고 품위 있는 마무리를 선택했다. 하지만 한 해 11만 명이 넘게 생을 마감하는 요양병원과 요양원은 여전히 존엄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연명의료 중단을 선택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게 돼 있다.
경기도 성남시 A(70)씨는 지난해 8월 아들(당시 38세)을 잃었다. 아들은 2015년 불의의 사고를 당해 식물인간 상태가 됐다. 호흡을 못 해 산소호흡기를 달았고, 식사를 못 해서 배에 구멍을 뚫어 관으로 위에 직접 음식을 넣었다. 의식이 없었고 어떠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뇌가 거의 죽은 상태였다. 혈압을 조절하는 약을 수시로 투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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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는 성남과 서울의 대학병원을 전전했다. 한 병원에서 3주 이상 입원할 수 없었다. 대형병원이 장기 입원에 적합하지 않아서다. 큰 병원들을 돌다 어쩔 수 없이 경기도의 요양병원에 들어갔다. A씨는 아들의 고통을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 지난해 2월 존엄사법이 시행되면서 ‘이제 아이를 편히 보낼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며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연명의료 중단법이 통과해 아들의 고통을 줄일 수 있겠다고 여겼는데, 요양병원이라서 안 된다고 하니 이게 말이 됩니까. 연명의료법이 아무 쓸모가 없어요. 요양병원의 1%만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는데, 연명의료를 중단하기 위해 환자를 큰 병원으로 데려가야 한다는데 이게 무슨 존엄사입니까.”
A씨는 이렇게 항변했다. 지난해 3월 청와대 국민청원에 호소문을 올리기도 했다. 그의 아들은 지난해 8월 요양병원에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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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는 의료기관 윤리위원회가 없는 병원은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4월 기준 1560곳의 요양병원 중 윤리위원회가 설치된 데가 22곳(1.4%)에 불과하다. 이는 5명 이상 20명 이하로 구성하되 의료인이 아닌 종교계·법조계·윤리학계·시민단체 등의 추천을 받은 2명을 포함하게 돼 있다.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자체적으로 만들지 못하면 공용윤리위원회(현재 9개 대학병원)에 위탁하면 된다. 연간 200만원(협약료)을 내야 한다.
최근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 주최 토론회에서 이 문제가 집중적으로 부각됐다. 김명희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사무총장은 “요양병원에서 연명의료중단을 못 한다고 하고,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한다. 어느 병원이 연명의료 중단을 위해 환자를 받아주겠느냐”고 지적했다. 환자가 연명의료 거부 의사를 담은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해서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등록해둔 경우도 요양병원에서 조회할 수 없다. 최경석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전의향서를 작성한 경우에도 요양병원에서는 휴지조각이 된다. 요양병원이 정부의 시스템 들어갈 권한이 없다”고 지적했다.
김명희 총장은 “요양병원 입장에서 득이 될 게 별로 없는데 굳이 200만원을 부담해서 공용윤리위원회에 위탁해 연명의료 중단을 하려고 들지 않는다. 200만원이라도 정부가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요양병원이 임종 서비스를 강화하도록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며 “임종환자 진료 가아드라인을 만들고, 인력 양성과 교육을 지원하며 질 평가를 해서 알려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요양병원장은 “보호자가 연명의료 계획에 따라서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을 요구하거나 절차를 밟기 원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이나 연명의료 중단 이행도 할 수 없어 다른 병원 응급실이나 대형병원으로 보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윤리위원회가 없다고 연명의료계획서 작성도, 연명의료 중단을 집행할 수 없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