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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66주년, 전사자 유해 가족품에 안겨주자

마지막 희망은 유해발굴, 시간 지날수록 더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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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뿐인 아들이셨는데도 꼭 가야한다며 입대하셨다가 전사하셨대요. 할머니와 제가 평생 찾았는데 아직 어디서 돌아가신줄도 몰라요. 죽기 전에 아버지 유골을 찾고 싶습니다."

 6·25전쟁 발발 66년이 지났지만 유해를 찾지 못한 유가족들의 슬픔은 반세기가 넘도록 현재 진행형이다. 유해발굴감식을 통해 신원이 드러나는 경우가 극히 드물지만, 남겨진 유족들에게는 이 것이 유일한 희망이다.
광주 서구 치평동에 거주하는 6·25전몰유족 장성님(67·여)씨는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7월 당시 광산구 마륵동에서 태어난 6·25전쟁둥이다. 유복녀였던 장 씨는 지금까지 아버지 얼굴을 사진으로 보지 못했다.

 장성군 남면 덕성리에서 태어나 자란 장씨의 아버지 고(故) 장동인씨는 22살이 되던 해 17살이던 장 씨의 어머니와 결혼했다. 바구니 짜는 기술로 가정을 꾸려가던 장 씨의 아버지는 신혼의 단꿈이 깨기도 전인 1950년 6·25 전쟁을 며칠 앞두고 입영통지서를 받았다. 4남매 중 유일한 아들이었기에 다른 가족들의 만류도 심했지만 장씨의 아버지는 고집스럽게 입대를 결정했다. "꼭 가야한다"며 산달이 얼마 남지 않은 아내를 남겨둔 채 아버지는 입대했고 한 장의 전사통지서만이 아버지의 소식을 전했다. 장씨의 할머니는 아들의 시신이라도 찾으려 백방을 찾아 헤멨지만 전사자 유해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없던 당시에는 찾을 길이 없었다.


유해발굴이 마지막 희망

 6·25전쟁이 끝나자 어머니는 재가했고 외동딸이었던 장씨는 할머니 손에 자랐다. 장씨는 할머니와 친척들로 부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성인이 된 이후 할머니를 대신해 아버지 흔적을 찾았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육군 본부에 문의해도 아버지가 어디서 어떻게 전사했는지 흔적 조차 알기 어려웠다. 딱 한 장 있던 아버지 사진은 이미 전란통에 없어진지 오래됐다. 장씨는 "아버지 사진이라도 구해보려 했지만 찾지 못했다"며 "꿈에서 얼굴도 모르는 남성이 나타나면 그저 아버지, 아버지 외치며 눈물만 훔치곤 했다"고 말했다.
전사자 유해발굴작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장씨는 아버지 찾는 것을 사실상 포기해야만 했다. 60년이 지난 지금 장씨가 아버지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곳은 현충원 뿐이다. 유골도 없이 추모벽에 새겨진 아버지의 이름 세 글자를 보기 위해 장씨는 매년 이 곳을 찾는다.

 국방부 유해발굴 감식단이 창설된 지난 2007년 장씨도 국방부의 안내를 받아 DNA를 채취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아버지의 유해를 찾았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한줄기 희망이 오히려 고통스러워 안타까운 장씨는 육군측에 수차례 문의했지만 찾고 있으니 기다려 달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특히 다른 형제 자매도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DNA 만으로 아버지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 작업은 더디기만 하다. 장씨는 "형제 자매도 없이 나 혼자라 DNA가 부족할까 불안하다"며 "내년에는 8촌 당숙 아들의 DNA도 등록하려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시간 지날수록 감식 어려워

 장씨처럼 6·25 한국전쟁 유족들은 대부분 고령인데다 세상을 떠나고 있어 DNA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난 탓에 유해가 발굴된다 할지라도 풍화작업이 진행돼 DNA를 채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전쟁으로 희생된 군·경 16만2천394명 가운데 유해를 찾지 못한 이는 모두 13만3천192명에 달한다. 현재까지 신원이 최종적으로 확인돼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간 것은 113명에 불과하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관계자는 "두개골이나 치아 기록이라도 있던 시절이라면 도움이 되겠지만 6·25 당시에는 그나마도 없었다"며 "발굴된 유해들의 상태 역시 온전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또 "유족 한 명의 DNA 보다는 부계와 모계 양쪽의 DNA로 비교하는 것이 확률이 높기 때문에 DNA 대조에 많은 시간이 걸리고 있다"며 "하지만 유해발굴감식단은 법률이 보장하는 한 유해발굴감식 작업을 영구히 진행할 것으로 보고 있는 만큼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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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교만큼 중요한 죽음준비 -김영심 웰다잉전문강사 임신 10달동안 태명에서부터 음식, 음악, 독서, 태담, 동화, 영어와 수학으로 학습태교까지 하고 있다. 태어날 아기를 위해 정성스럽게 최선을 다해 태아교육을 하고 있다. 탄생만큼 중요한 죽음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보건소나 노인대학 강의시 죽음준비를 하고 계신가요?라고 물으면 “나는 죽음준비 다 해놓았어요.”라고 대답을 하시는 분이 계신다. 어떻게 하셨느냐?고 물으니 윤달이 있어서 수의를 해 놓았고 영정사진도 찍었다고 하신다. 결국 수의와 영정사진만이 죽음준비를 대신하고 있다. 죽음준비 강의 후에 ‘내가 죽는다는 것은 생각을 안 해봤는데 죽는다고 생각하니 서글프다’ ‘죽음에 대해 막연히 두려웠는데 오늘 강의를 듣고 나니 오히려 편안해지네요.’ ‘사는동안 잘살고 죽음도 잘 받아 들여야겠어요.’ ‘확 깨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집에 가서 자식들하고 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이런 강의 처음 들었어요’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 좋은 시간이었어요.’ 등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셔서 감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학장님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라며 못을 박으며 ‘신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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