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국(南國) 사람의 얼굴처럼 아름다우니 봄날의 숲과 가을단풍 같았다." ▶백제 중앙관서 "외경부" 목간도 공개 ▶당으로 끌려간 백제 의자왕의 증손녀 부부의 묘지명이 당나라 도읍 시안(西安)에서 발견됐다. 당으로 끌려간 백제 의자왕의 증손녀의 묘지명이 당나라 옛 도읍 장안(長安)인 시안(西安)의 당 고조 이연(李淵.566-635)의 무덤인 헌릉(獻陵) 주변 도굴된 무덤에서 그의 남편 이옹(李邕) 묘지명과 함께 발견됐다. 이 묘지명은 2004년 조사에서 출토된 것으로 부여태비의 가계와 생애, 인품 등을 기록했다. 또, 백제 정부가 곡물을 빌려주고 그 증빙서류로 작성한 공문서 목간이 발견된 부여 관북리 유적에서 수습된 유물 중에 백제 중앙정부 관서인 "외경부"(外경<木+京>部)라는 글자가 적힌 목간이 추가로 확인됐다. 이런 사실들은 백제학회(회장 양기석)가 15일 오후 충북대 인문대학 시청각실에서 "백제의 신출토 문자자료"를 주제로 개최하는 제1회 정기발표회를 통해 공개된다. 이 자리에서 백제 부흥운동사 전공인 김영관 청계천문화관장은 2004년 중국 산시(陝西)고고연구소가 시안 북쪽에 있는 당 고조 이연(李淵.566-635)의 무덤인 헌릉(獻陵) 주변의 도굴된 무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의자왕 증손녀인 부여태비(扶餘太妃)와 그의 남편인 이옹(李邕) 부부의 묘지명을 각각 찾아냈다는 사실을 공개한다. |
본문격인 묘지는 가로 74cm, 세로 70cm이며, 두께는 9cm로 표면을 연마해 광택을 냈다. 이에는 전문(全文) 30행, 1행 각 31글자, 총 831자에 이르는 문장을 해서(楷書)로 음각해 새겼다. 글자체는 날렵하면서도 활달하고, 깔끔하면서 분명하고 힘이 있다고 김 관장은 덧붙였다. 비문에는 훗날 당 제후의 왕비가 된 백제여인을 “남국(南國) 사람의 얼굴처럼 아름다우니 봄날의 숲과 가을단풍 같았다. 아주 좋은 집에 살았으나 아침 햇살처럼 조용히 움직여 드러나지 않으니 세상에 드물게 어진 사람이었다”고 기록돼 있다. |
부여태비는 이름은 알 수 없으나 이옹의 아들이 "괵왕"이라는 봉작을 이어받음에 따라 "괵왕태비(王太妃)가 되었음을 이 묘지명을 알려준다. 부여태비는 부여씨 성을 가진 왕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이로써 백제 왕족이 당에서 왕비족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직접적인 기록을 확보하게 됐다고 김 관장은 덧붙였다. |
묘지명에 의하면 부여태비는 738년 8월9일 장안(長安)의 숭현방 사저에서 49세로 세상을 떠나고 그 해 11월15일 먼저 죽은 남편 이옹과 합장됐다. 묘지명은 부여태비가 백제의 왕족으로 숙녀(淑女)의 삶을 살았다고 기록했다. 한편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백제문화재연구원 박재우 실장은 올 여름 부여 쌍북리 280-5번지 일대 발굴조사에서 수습한 백제시대 목간 6점 중에는 기존에 공개한 소위 "좌관대식기"(佐官貸食記)라는 곡물 대여 문서 외에도 "외경부"라는 백제 중앙관청 이름이 적힌 목간이 포함돼 있음을 유물 보존처리과정에서 확인했다고 보고한다. [연합뉴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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