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품어온 아내 흔적 조건 없이 병원에 맡겨 ▶"집사람 잘 부탁합니다, 정말로" ▶지난 7일 오전 서울 동작구 천주교 흑석동 성당 납골당 "평화의 쉼터"에 말쑥한 양복 차림의 노인이 들어섰다. 4년 전 화가였던 부인 이경화(당시 70세)씨와 사별(死別)한 서상희(82)씨다. 그는 주말이면 늘 이곳을 찾아 백혈병으로 먼저 떠난 부인과 못다 한 얘기를 나눈다. 이날 신씨는 평소와 달랐다. 꼭 해야 할 중요한 얘기가 있는 모양이었다. 눌러 쓴 모자를 벗는 손이 떨렸고 충혈된 눈엔 물기가 어렸다. "여보, 당신이 기뻐할 만한 일이 있다오." 부인의 유골함이 담긴 안치단을 쓰다듬으며 서씨가 속삭이듯 말했다. "병원에서 당신 그림을 다 받아주기로 했거든. 그렇게 아꼈던 당신의 분신(分身)들이잖아…." 서씨는 지난 4일 부인의 유작(遺作) 70여 점을 아무 조건 없이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에 기증했다. 화사한 빛깔의 꽃과 과일을 그린 정물화, 항구에 정박한 고깃배를 거친 붓 터치로 그린 풍경화 등 다양한 작품들이다. 평소 꽃을 좋아한 부인은 알록달록한 색감의 꽃 그림을 즐겨 그렸다고 한다. 추상(抽象)을 혼합한 정물화도 여러 점 보였다. 타계하기 몇 년 전부터 새롭게 시도한 그림들이다. |
이화여대 미대를 다닌 이씨는 1993년과 1995년 대한민국미술대전에 2차례 입선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5년까지 4차례 개인 전시회도 열었다. 마지막 개인전이 된 2005년 11월 화랑미술제에서 이씨는 "초대"를 주제로 작품을 전시하며 이런 글을 남겼다고 한다. "하얀 캔버스 위에 물감을 초대하고, 사랑을 초대하고, 당신을 초대합니다." 세상과 가족에 대한 애정을 담뿍 담은 작품을 낸 지 5개월 뒤, 그는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3개월 힘든 투병생활 끝에 2006년 7월 28일 세상을 떠났다. 사업하느라 늘 바빴고 미술에 대해 문외한이던 남편 서씨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며 행복해하던 아내 모습을 보기만 해도 좋았다"고 했다. 1956년 경남 마산에서 처음 만나 3년 열애 끝에 결혼해 40여 년 알콩달콩 살아온 부부였다. 부인이 하늘나라로 떠난 지 4년이 지났지만, 남편은 화실을 정리할 수 없었다. 주변에서 "화실 공간을 임대하면 매달 100만원이 넘는 돈을 받을 수 있는데 굳이 그렇게 고집 피울 일이 있느냐"며 답답해했지만, 그는 "집사람을 한시도 잊지 못한 채 지금도 살고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아내가 20여 년 써온 공간을 그런 식으로 정리한다는 게 마음 내키지 않았지요. 밤에 자다가 중간에 깨면 아내 생각에 도저히 잠이 안 오고…. 낮에도 잠깐 눈을 감으면 둘이 즐겁게 지내던 시간이 떠올랐어요." 지난달 28일 부인의 4주기를 맞아 서씨가 큰 결심을 했다. 부인이 힘겹게 투병하던 3개월 동안 마주쳤던 백혈병 환자들의 얼굴이 하나 둘 떠올랐다.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드는 이들 환자에게 아내의 그림이 도움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반백 년 인생 동반자를 잃은 상실감으로 오른쪽 눈을 실명한 서씨는 그날 깊이 울었다. 4일 오후 여의도성모병원에서는 조촐한 기증식이 열렸다. 병원 측이 서씨와 그의 둘째 아들 정환(35)씨를 초청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자리였다. 서씨 표정에는 뿌듯함과 안타까움이 교차했다. "병원에 그림이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으면 고인(故人)이 참 좋아했을 것"이라는 말에 얼굴이 환해졌다. 하지만 "아내의 흔적을 모두 떠나보내는 것 같아 마음이 참 괴롭다"고 나직이 말할 때는 아쉬움에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여의도성모병원 문정일 원장은 "부부의 사랑이 담긴 작품을 보고 많은 환자가 희망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모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도록 가장 좋은 자리에 걸어놓을게요." 문 원장의 말에 서씨가 울먹이며 말했다. "집사람 잘 부탁합니다. 정말로…." [조선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