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교과서가 이제 죽게 됐습니다. 그래서 장례식을 합니다. 21일장이 될지 100일장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한말글문화협회, 한글문화연대 등 한글 관련 53개 단체가 모인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 반대 국민운동본부'가 서울 도심에서 한글 교과서의 장례식을 치렀다. 이 단체 소속 20여명으로 구성된 장례 행렬은 13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한글회관을 출발해 광화문 일대를 차례로 돌았다. 참가자들은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상과 세종문화회관 옆 조선어학회 순국선열탑, 주시경마당을 방문해 묵념을 했다. 이들은 굵은 베옷을 입고 굴건을 쓴 채 초등학교 교과서 표지를 액자에 넣은 영정과 유골함을 들었다.
'한자병기 웬 말이냐' '한글 교과서 살려내라'라고 적힌 만장 10개가 그 뒤를 따랐다. 이대로 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는 장례 행렬을 시작하면서 "21일장이 될지 100일장이 될지 모르겠지만, 끝까지 한글 교과서를 지키도록 싸우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행렬을 마친 뒤 오전 11시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자 병기 정책 추진을 비판했다. 이들은 "교육부는 일본식 한자혼용 주장자들 말만 듣고, 그것도 광복 70주년에 한자 병기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신문과 대학 논문도 한글로만 쓰는 세상에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0년부터 한글만으로 교과서를 만들게 해 반세기 만에 온 국민이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됐다"며 "그 바탕에서 경제도 발전하고 우리 문화 '한류'가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종택 한글학회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님께 드리는 글'에서 "초등 교과서에 한자를 함께 적게 되면 한자 사교육 시장이 번창하고 초등학교 학생의 학습 부담이 늘어난다. 이는 대통령님의 업적에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남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진 :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한글회관 앞에서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반대 국민운동본부 관계자가 한글교과서 장례식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